[펌]코딩하는 아내
나는 프로그래머의 아내다.
결혼한지 2년이 되었다. 오늘 남편과 나는 근사한 식당에 가서 맛있는 식사를 했고, 꽃다발도 선물로 주었다.
공대생 혹은 프로그래머는 보통의 여자들에게 인기 없는 부류의 사람일 수 있다. 부드러움, 따듯함, 이해심을 느끼기 어렵고, 공감 제로, 차갑고 논리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 소개팅 후에… 몇 번 만나보고나서.. 아 별로야.. 이 사람 자상하지 않아.. 하고 만남을 그만두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한숨이 지어진다.
사실 프로그래머의 아내, 여자친구로 있는다는 것은 아쉬운 때도 있겠지만, 매우 매력적인 자리이다.
일례로, 집에서 ‘쿵’ 하는 굉음이 나며 내가 ‘아야!’ 하는 비명을 질렀다고 하자. 남편은 들여다보지도 않고 하던 일 계속 한다. 못들은 것이다. 뭐…. 자상함이고 배려심이고.. 뭔가 꼬인 마음이 있거나 한 것이 아니다. 무언가에 집중해있어서 단지 못들은 것 뿐이다.
실수가 많은 나는 자주 다친다. 부딪히고 까지고 지금은 발목 타박상을 입어 근육파열로 붕대를 감고 있다. 그런 내가 어디가 아파하면.. 교제할 시절의 남편은 슬쩍 보고 지나갔다. 아무것도 아니네.. 라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서러웠다. 죽을 병이 아니어도.. 여자는 공감 받고 싶고, 위로 받고 싶다. 몇번의 아쉬움 끝에.. 나는 이야기를 했다.
나: 오빠! 내가 아플 때 걱정해주면 안돼?
남편: 나 걱정해. 걱정하는데? 아~~ 걱정된다.
나: 아니 그거 말고 정말 진심으로 걱정하면 안돼?
남편: 아니 뭐!! 그게 도대체 어떻게 하는건데?
나: (순간 고민…) 나라면.. 이렇게 하겠어. “으~~~~ 어떡해… 괜찮아?”
그 이후로 오빠는. 단 한번도 레파토리가 바뀌지 않은 채 ‘으~~~ 어떡해.. 괜찮아?’ 를 기계적으로 해준다. 단 한번의 응용도 없었고 순서가 바뀐 적도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얻었다. 공감의 말…
여자는 요구가 어렵다.
알아서 해주길 원한다.
기념일엔 아라서 꽃다발 사줬으면 좋겠고…
알아서 케익 사왔으면 좋겠고…
알아서 데려다줬으면 좋겠다.
은근히 기대하고.. 기대대로 안 되면 실망한다. 그래서 혼자 삐지고 툴툴댄다.
하지만 남자 입장에서 말 안하고 꽁하고 있으면? 절대 모른다.
절대로 남초 집단에서 퀴즈와 과제로 밤을 꼴딱꼴딱 새는 남자집단에서 그런 여자 마을을 알리가 없다.
헛된 기대 금지.
그들이 특별하게 차가운 인간인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모를 뿐이다.
프로그래머랑 사귄다는 것은 이런 점에서 그 매력을 십분 발휘한다. 그들의 습득력은 정말 놀랍다. 코딩을 해주면 정말 그것대로 반응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저런 코딩을 한다.
오빠. 집에 들어오면 나한테 인사를 해.
오빠. 결혼 기념일에 꽃을 사줘.
오빠. 음식점에서 음식이 나오자마자 혼자 먹지 말고. 한번쯤 나 한입 먹여줘
이럴땐 이렇게.. 저럴때 저렇게…
몰라서 그렇지, 코딩해 주고 그게 이해가 되면 그대로 해준다. 그래서 뿌듯함까지 느낄 수 있다.
하루종일 컴퓨터와 대화하며 논리적 사고가 익숙해있는 남편과 이야기할 때면 가끔 기계랑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때가 있다. 하지만 기계의 장점이 있다. 예상이 가능하다.
남편은 가끔, 집에 신나서 달려온다.
혜린아!! 내가 오늘 하루종일 한게 뭔줄 알아?
봐봐!! 여기 이렇게 누르면 폴더가 스르륵 커지지?
이거 내가 한거야!! 멋지지?
사실 그 폴더가 스르륵 커지든 화들짝 커지든 아니면 안 커지든.. 나는 별로 관심도 없고.. 변화도 모르겠는데…
그들의 기쁨의 원천은 자신이 이룩한 결과물에 대한 인정이다. 이럴 땐 활짝 웃으며 멋지다!!! 어떻게 이런 걸 다 했어? 라고 해주면 또 신나서 달려 나간다.
그러므로 결론은?
프로그래머. 꽤 괘찮은 남편감이다. 아니, 훌륭하다.
다른 직업만큼 술 약속도 없고. 가정적이며 열정적이다!
그러니까 공대생. 프로그래머의 매력을 느껴보기 전에..
섣불리 여자 맘 모른다고 차버리지 말자.
그들은 순수한 것이다. 단지 그 순수함에 하나씩 코딩을 해주면 된다.
그러면 100 퍼센트 완벽한 남자친구. 남편이 될 수 있다. 남편 최고!